늘 그랬듯,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나가고 어느새 8월이다. 사진첩을 둘러보니 7월 동안 무얼 했었는지 이제서야 떠오른다. 몇 달 전처럼 느껴지는 사진도 있고 그때의 감정과 생각이 순식간에 떠오르는 사진도, 기억조차 안 나는 사진도 있다.
2021/7/2
퀸즈 블루버드 (Queens blvd), 캘리포니아 감성의 멕시칸 음식점이다. 점심 식사 중 회사 동료에게 급 추천받아 갔었다. 양재역과 매봉역 사이에 있는데 퇴근 후 걸어가기에 괜찮았다. 소윤이랑 양재에서 만나면 가던 곳만 가게 되어 이날만큼은 새로운 곳을 갔으면 했었는데 성공적이었다. 세트로 시켜 부리또와 새우 타코, 퀘사디아가 함께 나왔는데 기대했던 새우 타코보다 부리또가 압도적으로 맛있었다. 고기 풍미가 어마어마했고 밥 대신 감자가 들어갔었는데 반개만 먹어도 포만감이 들었다. 다음 먹은 타코와 퀘사디아도 평타 였지만 배부름과 부리또의 풍미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저 그랬다. 지금은 다이어트에 돌입한 소윤이가 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며칠 뒤 명신이를 데리고 한 번 더 갔었는데 안 그래도 배부른 상태에서 먹어서 그런지 처음 느꼈던 감동적인 맛이 잘 안 느껴졌다. 1달에 한 번만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맥주 한잔하면서 배도 채우고 이런저런 얘기 하기 좋은 분위기라 pub 대신 가기 좋은 장소다. 미국 냄새나는 장소랄까. 음악은 조금 시끄럽다.
2021/7/3
간만에 상균이 형네 집에서 술 한잔했다. 계획은 형수와 셋이서 도란도란 집들이 느낌이었는데 임신 초기라 자리만 마련해 주시고 방으로 들어갔다.
재이가 태어난 이후로 예전처럼 둘이 안경 얘기하면서 맥주 한잔할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었다. 게다가 매일 야근하는 상균햄은 칼퇴 하는 날에도 서둘러 집에 들어가기 바빴다. 독박 육아 중인 아내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서. 그런 형 모습이 안쓰럽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두 아이를 둔 외벌이 아버지의 삶의 무게란. 지금의 나로선 100%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편하게 술 한잔할 수 있는 날이 오겄지' 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이 이날이었다.
이날도 언제나처럼 안경이야기였다. 평소에도 전화로, 톡으로 안경 얘기만 하는 터라 정확히 무슨 이야기했는지는 기억 희미하다. 라치오랩, 젠몬, 요즘 안경판 이런 주제들이었겠지. 그러다 보고 싶던 명신이를 불렀고 9시가 넘어 도착했다. 그리고 왜 난 안 부르냐며 술먹던 은서는 2차로 상균형집을 택했다. 그렇게 둘에서 넷이 되어 소란스러운 밤이 깊어갔다.
너무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큰 잔에 소주와 맥주를 주저 없이 말아먹었다. 그리고 짜파게티 요리사를 자처하며 모두의 술잔에 소맥을 말아 재꼇다. 조용하던 명신이는 생존하여 일찍 귀가하였고(일찍이라 해도 12시였다) 나머지 셋은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팔리지 못해 기력을 잃어가는 물고기 마냥 정신이 혼미해져 가다가 1시가 넘어서 간신히 집에 들어갔다.
바닥에 그냥 널부러져 자고 있던 상균형이 그 어느 때보다 부러웠다.
이날 왜 비워지는 잔들을 세지 않았을까. 왜 쌓여가는 술병들을 외면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형수님께 너무나 미안했다.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다신 안 그럴게요 용서해 주세요...)
2021/7/4
오랜만에 미국에서 들어온 동욱이의 자가격리가 끝나고, 피앙세 효진 누나와 서연, 웅이와 함께 청첩장 모임을 가졌다. 웅이 결혼식 때만 해도 '아니 벌써'라는 생각과 '이제 그럴 나이구나' 하며 기분이 뭉글뭉글했는데, 하나둘씩 친구들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동욱이 결혼도 그러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20년 가까지 함께한 친구라 뭔가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특별한 마음보단 그저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되길 더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해야 할까. 감정보다는 현실적인 바람.
동욱이가 좋은 짝을 만난 것 같다. 털털한 효진 누나와의 케미가 좋아 보였다. 처음 보는 우리와도 알던 사이처럼 편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이날 대화를 이끈 사람은 웅이였다. 학생들에게 재밌는 썰을 풀 듯 우리에게 경험담들을 풀어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거북이 심폐소생술뿐이다.
2021/7/10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가 1천 명을 넘어서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됐지만 동욱이 결혼식은 피해 갔다. 식날이 4단계 시행일 전날이라 천만다행이었다. 한국에서 식 올리려고 미국에서 무리해서 들어왔는데 하마터면 가족 파티로 끝날 뻔했다.
식이 끝난 다음날 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버렸다.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효진 누나는 몇 달 더 있다 돌아간다던데 천국과 같은 시간을 보내느라 그딴 건 잊어버린 것 같다. 아이쿡유잇 채널에 새로 올라온 영상을 보니 살아 돌아간 거 같기는 하다. 그래, 그럼 되었지.
https://www.youtube.com/channel/UCiZa7evIBTXC7Qqtui8rEBQ
아이쿡유잇_ICUE LA
안녕하세요! LA에서 집밥해먹는 자취남들 ICUE 입니다! 매주 토요일에 만나요! Instagram: ICUE.LA Email: icuetvla@gmail.com
www.youtube.com
2021/7/11
몇 주 전 미사 한공 공원 코트를 예약했었는데 도착하기 전부터 먹구름이 한가득이었다. 기대가 컸던 첫 예약이었고 무더위가 예상되는 2시타임라 걱정이었는데, 주차하고 앞 유리창을 보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최근 배우기 시작해 의욕 넘치는 서연이도 불렀는데, 코트에 들어가 자세 좀 봐주고 공 몇 번 쳤더니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그리고 5분도 안되어 미친 듯이 쏟아졌다.
느낌이 소나기인듯하여 조금 기다려보니 비가 그쳤고, 재빨리 밀대로 고인 물을 밀어내고 다시 시작하려 자세를 잡으니 또다시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대로 오늘은 끝인듯했다. 아쉬운 마음에 비를 맞으며 서브 몇 번 연습해보고 짐을 챙겼다.
맛난 밥이라도 먹자며 미사역 근처 태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가보니 평점이 높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딱 사진 찍기 좋은 감성의 태국 느낌 인테리어였다. (근데 난 태국을 안 가봤다.)
팟타이와 처음 보는 볶음밥을 시키고 기다렸다. 볶음밥이 먼저 나왔고, 밥알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때쯤 주방을 보니 팟타이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알바생에게 언제 나오냐 물었고, 곧 나온다 말하고 나서 10분 정도가 더 지나고 음식이 나왔다. 기분이 좋지 않던 우리는 당연히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두 번 연거푸 머리카락이 나오자 오늘은 '운수 좋을 날'이구나 싶었다. 다시 만들어 준다는 걸 거절하고 카페로 향했다. (역시 식당 사진이 없다)
2021/7/13
요즘 집 관련 걱정이 많다. 미친 듯이 치솟는 집값에 지금이라도 내 집 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고민이다. 조언을 구하고자 웅이한테 연락해 약속을 잡았다.
웅이가 일하는 학교로 찾아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가는 것 같았다. 내 모교는 아니었지만 감회가 새롭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감옥 같던 고등학교의 기억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모란역 근처 족발집으로 향했다. 코로나가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화 주제는 당연 부동산이었다. 2018년부터 폭등하고 있는 집값은 코로나와 함께 멈출 줄 모르고 고공행진 중이다. 서울의 소형 아파트 매매가는 기본 10억을 넘어가고 있으며 위례, 동탄, 하남과 같은 경기 신도시 아파트 역시 10억이 넘는다. 쓰러져 가는 서울 아파트들조차 6억 밑으로는 씨가 말랐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싶다. 열심히 일해 받은 월급으론 꿈도 못 꾸는 지금 서울 집값이.
실패한 정부 정책과 꽉 막힌 공급난으로 앞으로도 계속 오를 거라고 하니 '지금이라도 내 집 마련을 해야하는가' 하는 물음엔 부동산 전문가 웅이도 선뜻 해답을 말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2021/7/15
간만에 라치오 랩 미팅을 가졌는데 약속이 있다던 규동씨는 끝내 들어오지 못했다. 미팅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2021/7/16
날씨가 갑작스레 더워지고 있었다. 연일 36도를 오가며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날 소윤이와 만나 무얼 먹을까 톡을 주고받았는데, 둘 다 일말의 고민 없이 냉면을 외쳤고 퇴근 후 바로 매봉역 근처 평양면옥으로 향했다.
을밀대, 봉피양, 평가옥 유명하다는 평냉집은 여러 번 가봤는데 평양면옥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다른 곳보다 육수가 진하고 간이 더 강한 느낌이었지만 맛은 훌륭했다. 수육 먹으러 한 번 더 방문해야할 것 같다.
2021/7/18
무더위가 모두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하늘과 공기는 참으로 청명했다. 봄과 가을에도 이렇게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1/7/20
최근 양재에서 벗어나 매봉 맛집들을 찾아 나서고 있는 소윤과 나는 마지막 만찬으로 돈까스를 택했다. 마지막인 이유는 소윤이 수요일부터 PT를 받기 때문이었다.
신설동 즐거운 맛 돈까스를 잊지 못하고 있던 소윤은 비슷한 돈까스 맛집을 가고 싶다며 찾아낸 곳이었다. 등심돈까스와 모듬(안심과 소고기까스가 함께 나오는) 돈까스를 하나씩 시켰는데 등심이 압승이었다. 모듬도 맛있었지만 몇 점 먹으니 조금 느끼했다. 다음에 또 오면 등심만 시켜 먹을 것 같다.
다음 코스는 케익이었다. 새로 생긴 심재에서 아아와 말차 케익을 시켰다. 양재 시민의 숲에서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을 준 심재였는데 매봉점은 커피도 케익도 모두 합격이었다. 심재가 분점을 내면서 업그레이드된 걸까, 우리 입맛이 바뀐 걸까, 아님 기분 탓일까.
이날을 기점으로 소윤은 PT와 함께 풀때기만 먹는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원래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시작한 PT였는데 코치님이 다이어트가 더 시급하다며 살부터 빼자고 했단다. 운동 보름 전부터 이젠 못 먹는다고 먹고 싶은 건 다 먹더니 ' 왜 그랬을까'를 매일 외치고 있다. 어쩐지, 돈까스 먹기 전부터 이미 볼에 돈까스가 들어있는 것 같았어 소윤아... :)
2021/7/26
오후 반차를 내고 일찍 퇴근하는 상균 형과 뚝섬 작업실에서 만났다. 간만에 느끼는 작업실의 느긋한 오후 정취였지만 둘의 마음은 그리 느긋하지 않았다. 각자의 고민이 많았고 오가는 대화도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나이는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들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더군다나 그런 존재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쩌면 큰 복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붐비는 퇴근 시간을 피해 일찍 귀가하려 했지만 서로를 놓아주지 못했다. 못내 아쉬웠는지 뚝섬역에서 건대까지 걸어갔다. 처음에는 선선하니 걸을만했다. 해가 저물 때가 되어 그리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건대역에 다다를수록 목이 타왔고, 길가에 늘어선 식당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우리 고개를 돌리게 했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상균형은 치킨에 맥주 한잔하자 했지만 거절했다. 치맥의 유혹이 나의 테니스 레슨과,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재이와 아내를 잊게 만든 듯했다.
공사판 담벼락에 붙은 보테가 포스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균형은 사진 계정용(@flatsat)으로 몇 장 찍는다며 모델 요청을 했다. 흔쾌히 수락했지만 내가 없는 사진만 올라갔다. 분명 태현로 태그한다 했던거 같은데, 작업실에서 이상하게 찍힌 사진만 본인계정에 업로드 됐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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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t saturday님의 Instagram 게시물 • 2021 7월 27 1:04오전 UTC
좋아요 17개, 댓글 1개 - Instagram의 flat saturday(@flatsat)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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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7호선 건대입구역은 매우 붐볐다. 거리 두기 4단계가 무슨 소용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 대를 보내고 다음 열차에 탔지만 사람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사방팔방 사람들의 어깨에 결박된 채 열차가 가는 방향대로 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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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없다 생각했던 순간도 돌아보니 별거였다. 하루 하루를 소중히 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8월에는 또 어떤 사진들로 채워질지 내 사진첩이 궁금해진다. 열심히 기록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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